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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변했다. '그린 파파야 향기'

기억 속의 베트남


 사람들이 기억하는 (영화속의) 베트남은, 언제나 전쟁 중이다.

 붉은 머리띠 휘날리며 적군을 쓸어 넘긴 '람보'와 넓게 펼쳐진 정글의 아침을 울리는 DJ 애드리안의 '굳모닝 베트남!', 안성기 주연의 '하얀전쟁'이나 한국의 신 여성상을 그려낸 '님은 먼 곳에' 조차도 베트남은 전쟁중이다. 나 역시도 베트남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기억은 어릴적 본 외화시리즈 '머나먼 정글'과 롤링스톤즈의 'Paint it Black'이 아닐까 한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지도 벌써 50여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마치 외국인들이 한국을 몇십년 간이나 한국전쟁으로 기억하듯,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베트남을 월남전 패배 이후 공산주의 국가로, 그리고 공산주의 국가가 대부분 그러하듯, 열악하고 황폐한 나라로 기억하고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지금의 베트남을.
 쌀국수와 커피, 아오자이, 커다란 모자와 자전거, 그리고 오토바이족들...
우리는 베트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영화의 시작

 

 늦은 밤, 지금은 호치민시로 불리는 옛 사이공의 한 중산층 가정으로 '무이'라는 어린 소녀가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인 아저씨가 연주하는 당응윗*의 잔잔한 음악소리가 깔리면서. 그렇게 영화는 천천히 '무이'의 삶을 그려나간다. 무이를 둘러싼 하루하루의 소소한 일들은 한편으로는 우리네 따분한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지루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기대와는 다르게(?) 영화는 끝까지 무이의 삶을 느긋하게 그려내고야 만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에 대한 평을 '베트남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낸 영화'라고 요약한다. 혹은 '무이의 삶'을 보았다고 하는 이도 있다. 물론 영화는 보는 사람마다 보고싶은것을 보고 또 보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꼭 보아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베트남의 역사다. 



과거에서 현재로


 역사라고 까지 말하면 조금은 거창한 이야기가 될 듯 싶어 조금 구체적으로 먼저 이야기를 하자면 이 영화는 베트남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그리고 있다.는 말로 표현하면 조금 더 정확하겠다. 그래 역사라기 보다는 베트남도 변화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주장에 가깝겠다.

 영화 속에서 우리가 베트남의 변화를 엿 볼 수 있는 장치는 대충 세가지가 있다. 물론 이외에도 자잘자잘한 설정들이 많지만 크게 본다면 다음과 같다.



 - 영화의 배경

 


 그 첫번째가 바로 영화속의 물리적인 배경이다.


이 영화의 감독인 트란 안 홍은 베트남에서 태어나 어릴 적 프랑스로 이민을 간 교포 1.5세대다. 비록 프랑스에서 생활을 했다곤 하지만 그는 분명 어린 시절 베트남에서 살았으며 직접적으로 베트남의 문화를 체험한 사람이다. 하다못해 그의 부모님은 빼도 박도 못하는 베트남 사람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추억속의 베트남을 그리고자 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감독의 경험은 우리가 상상하는 가장 완벽한 베트남을 만들어 낸다.


  그것을 보여주는 장치가 바로 주인집의 가족 관계다전통적인 삶을 고수하며 불공만 드리는 할머니, 방랑벽이 있으며 집안일에는 완벽하게 무심한 주인 아저씨, 집안일과 바깥일을 도맡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주인 아줌마, 아버지를 닮아 나돌아다니기 좋아하는 큰아들과 아버지의 행동에 상처를 받아 비뚤어져만 가는 둘째, '무이'의 등장에 낯설어 하고 그 관심을 괴롭힘으로 표현하는 막내. 그리고 무이가 이런 집에 적응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움을 주는 식모까지.

  이런 구체적인 캐릭터의 묘사와 그들이 만들어 내는 관계는 전형적이면서도 전통적인 동양의 가정을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당연히 우리는 이러한 가부장적인 환경이 그리 어색하지 않겠지만, 서양인이라면 (그리고 아마 요즈음의 아이들이라면?) 감히 이해하기 힘든 장면들이 속출한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에 의한 반응이 확실하다는 것은 그만큼 과거, 그러니까 서구식 생활과 양식이 일반화되어 있는 요즘과는 반대되는 시기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


  이런 전통적 구성의 가정 환경은 무이가 주인집의 사정으로 그 집 큰 아들의 친구 '쿠옌'의 집으로 옮겨가면서 크게 변화한다.


 할머니에서 아이들에게 까지 이르는 수직적 관계는 온데간데 없고 '쿠옌'과 그의 연인 사이의 수평적이며 자유로운 연애가 이를 대신한다. 쿠옌의 삶 또한 그동안의 모습과 다르다. 하루하루 먹고 살 걱정을 하던 이전 집과는 다르게 쿠옌은 돈에 구애 받지 않는다. 연애를 하고, 작곡을 하고, 또 외출을 하는 자유로운 삶이다. 쿠옌의 연인 또한 서양식 옷차림에 서양식 입맛에 취향까지.. 모두가 새롭다. 혹여나 이러한 변화를 눈치 챌까 한번쯤은 전에 있던 집 사람들이 나와줄 법도 하지만 감독은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모양이다.

 그동안 보여주었던 베트남의 전통가옥과도 이별하고, 배경은 파스텔 톤으로 칠해진 회벽과 하얀 서양식 문, 창문으로 이루어진 신식 건물로 이동한다. 항아리와 나무 가구가 주를 이루던 인테리어도 피아노와 서양식 서랍장으로 바뀌었다. 무릎을 꿇고 청소하던 무이의 자세도 무언가 바뀐것 같다.  크진 않지만 영화의 삽입곡 또한 베트남의 전통음악 위주에서 서양식 피아노 음악위주로 바뀌는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 무이의 삶

 


 앞서 설명했던 영화의 배경에는 또 하나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이러한 변화의 중심이 '무이'에게 있다는 점이다. 무이는 이 영화에서 크게 두가지 역할을 한다. 배경의 변화를 설명해주는 혹은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관찰자'이자 동시에 자신 스스로가 베트남의 변화를 맞이하는 '역사' 그 자체다. 다시 말하면 무이라는 존재는 베트남의 변화를 설명하는 첫번째 도구의 일부임과 동시에 그 스스로 베트남의 변화를 상징하는 그 '두번째 도구'가 된다.


  영화의 시작에서 부터 무이의 삶은 정말 엄청나게 단조롭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밥을 짓고 살림을 한다. 영화는 그런 단조로운 삶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들을 통해 무이의 삶을 그리고 주인집의 가족의 모습을, 쿠옌의 삶을 그려나간다. 무이의 삶은 유교적인 여성의 모습 마냥 수동적이고 변화가 없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무이'의 삶도 조금씩 변화한다. 전통 가정에서 쿠옌의 집으로 옮겨가고 쿠옌의 집에서의 생활이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무이는 쿠옌의 연인이 놓고간 립스틱을 발라보기도 하고 좀 더 거울을 보는 시간도 많아진다. 그리고 쿠옌의 태도도 조금씩 변화한다. 서양식의 화려한 옷차림에 철 없는 아가씨 보다는 조용하고 조신한 전통적인 태도의 '무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결국 둘은 함께 하게 되고, 이제 영화는 마무리를 짓기 시작한다. 무이의 삶은 과거와는 달라졌다. 그때까지 지내오던 곳을 벗어나 쿠옌과 마주 앉는다. 같이 식사를 하고 쿠옌에게서 글을 배우고...'무이'가 한 명의 사람으로, 한 명의 여성으로 거듭나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마치 베트남이 전쟁을 전후로 점차 발전하고 사회적 인식이 변하고 누구나가 글을 배우며 달라져온 것처럼 아마도 감독은 '무이'를 통해 무이가 자라나면서 환경이 변하고 또 점점 여인으로 성장해 과정을 그리며 이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 시대적 배경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베트남의 역사를 다루고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는 이 영화가 그려지고 있는 당시 베트남의 시대적 상황을 들 수가 있다.

 영화는 50년대 사이공을 시작으로 약 10년간의 무이의 성장과정을 다루고 있다. 영화에서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당시 베트남은 제 1차 인도차이나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겪던 시절이다. 한국이 19506.25를 겪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베트남 역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으로 갈려 이념 싸움으로 정신이 없을 시기였다.

 비록 영화의 직접적인 배경은 평온하지만 무이가 몸담았던 주인집의 불안정한 관계구도와 경제적 불안 등의 설정은 단편적으로는 그 집안 내부의 사정으로 비추어 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베트남의 불안정한 상황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무이의 사회적 지위도 이와 맞추어 설명이 가능하다. 과연 사회적 변화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무이의 신분상승?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고전적인 신분제에 대한 언급이 없더라도 경제적인 차이에 의한 신분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당시 베트남에서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고 무이가 쿠옌과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당시의 시대적 변화가 이러한 신분적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만큼 변화했기 때문이 아닐까?

 

 

2013년의트남 

 



  얼마 전 의상디자인을 전공하는 여동생이 베트남으로 시장조사를 간 적이 있다.한 보다 베트남의 의류 시장이 잘 되어 있다나? 사실 그동안의 내 기억속의 베트남 역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보던 자전거족들과 낙후된 거리, 정리 안된듯한 분위기의 시장이었다. 베트남  전쟁까지는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나의 기억 역시 과거에 멈추어 있었다. 의류시장의 메카, 고급 커피 브랜드의 싱흥시장, 의료 서비스의 또 한 곳의 강자. 지금의 베트남은 달라져있다.


 사실 한국 역시 이러한 차별적 인식하에 놓여있다. 일본과 중국의 임나일본부설이나 동북공정과 같은 의도적인 왜곡은 차치하더라도 '말라리아 창궐 국가'나 '태권도가 중국의 쿵푸에서 비롯된 것'이라거나 '한글과 일본어가 흡사하다'는 등의 잘못된 정보들을 아직도 여기저기서 찾아 보고 있다.

 한해에 이러한 오류를 개선하기 위한 사업과 노력에 얼마나 많은 돈과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시간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왜?

 외국인들이 한국을 몰라주는 서러움을 알고 있다면, 한편으로 우리 역시 외국을 모르는 무례를 저질러서는 안될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마치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기회주의자 마냥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저 우리 자신의 위상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베트남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줌은 물론, 또 한편으로는 베트남도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우리가 가진 베트남에 대한 인식을 되돌아 보게 만들어 주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영화를 통해 베트남을 다시 한번 알았으면 한다.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도 얻어보았으면 한다. 나는 그랬다. 그리고 난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한번쯤은 더 베트남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에 대해서 생각했으면 좋겠다.




1 : 위키 - 베트남의 역사 1차 인도차이나 전쟁

http://ko.wikipedia.org/wiki/%EB%B2%A0%ED%8A%B8%EB%82%A8%EC%9D%98_%EC%97%AD%EC%82%AC#.EC.A0.9C1.EC.B0.A8_.EC.9D.B8.EB.8F.84.EC.B0.A8.EC.9D.B4.EB.82.98_.EC.A0.84.EC.9F.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