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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위기를 맞다.

공간, 위기를 맞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축가와 건축학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정보처는 책과 잡지였다. 그리고 건축 정보지의 대표격인 공간은 한국 건축 4세대에 당하는 시간을 함께 해왔으며 사실상 한국 건축계의 정보를 총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공간은 독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일반인과 학생에게는 너무 어렵고 난해한 잡지로, 건축 실무자들에게는 현실성이 없는 잡지로 인식되며 예전의 공간이 가졌던 공고한 위상이 무너져 가고 있다.

 

건축 잡지의 대명사 공간. 하지만,


공간의 문제점을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먼저 미디어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이 우선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디어의 역할은 크게 정보를 전달하는 전달자의 역할과 그러한 정보들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역할, 사람들을 선도하는 역할, 현재에 대한 문제 제기 역할 등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역할들이 제 기능을 다 할 때, 미디어는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성공적인 미디어로서 공간을 바라보기엔, 공간은 꽤 많은 부분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사실 공간은 그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미루어 보면, 미디어의 역할에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가장 먼저, 정보 전달자로서 공간의 역할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침식에도 그 위치가 확고하다고 할 수 있다. 오프라인 매체로서의 공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오히려 VMspace,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인터넷 미디어와 비교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정보 전달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공간이 기획하고 있는 한국 건축가에 의한 비평과 대담은 정보를 있는 그대로 전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현대 한국 건축의 시각으로 새롭게 종합하고 재해석하고 있다는 데에서 강점을 가진다.

 

하지만 단편적인 시각을 떠나 공간의 이야기가 현실과 만나게 되면, 공간이 가지는 한계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첫 번째 한계는 독자들과의 소통 부재다. 공간이 아무리 담론의 장을 만들고 건축적 인식을 활성화하려고 해도 사람들에게 공간의 이야기는 와 닿지 않는다. 일반인들이 보는 건축은 지극히 단순하지만,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은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철학적 단어와 용어가 가득하다. 상황은 다르지만, 건축 실무자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된다. 건축가 대부분은 격무와 박봉에 지쳐 가는데 공간의 작품 소개에는 또래의 젊은 건축가들이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했다면서 칭찬 일색의 글들이 가득하다. 사람들에게 공간은 공감할 수 없는 판타지다.

 

공간의 두 번째 한계는 공간 스스로 미디어의 권위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공간의 기사를 살펴보면 가장 중요한 기사인 비평과 대담의 대부분을 외부인사에 위임하고 있다. 이러한 외부인사의 기용은 한편으로는 더 확실한 전문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취지로 해석된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글들 때문에 공간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일관성을 잃어버렸으며, 공간 스스로 자신의 전문성의 부재를 시인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공간이 당면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공간은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되물어야만 한다. 사람들로부터 권위를 확보하고 건축계에 앞장서서 건축을 선도할 것인지 아니면 건축 전문가 아래에 서서 그들에게 전문성을 위탁하고 권위를 확보할 것인지 스스로 먼저 답을 내려야 한다. 사람들의 평가는 의외로 정확하다. 공간이 자신만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면, 독자들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독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에게 힘을 실어준다면, 독자들은 다시 한번 공간을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