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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vorite/Architect

건축은 그런게 아니다.

얼마전 정림건축의 이필훈씨가 페이스북에 건축의 현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글이 올라왔다.

 
 그 당시에는 다분히 감정적으로 대응했지만 조금더 생각을 정리해 보면 사실 이필훈씨의 글은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빈곤하고 자위적인 논리로 점철된 글이기에 무시해도 괜찮은, 그냥 산전수전 겪은것 같은 혹은 겪었다고 주장하는 노인네의 자조적인 읊조림이 아니었나 싶다.
 치졸하게나마 그 글의 맹점을 지적하고자 한다면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아아 시발 존나 까고 싶다. 이런 놈이 프레젠 테이션을 강조하는 소위 유명건축가라는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 글에 분노했던 이유가 궁금해 졌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아마도 우리에게 이필훈씨가 그리고 이필훈씨에게 우리가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 사람으로서 상대방의 아이덴티티를 정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점 또한 여기에 있다.

 이필훈씨의 글은 고용주와 피고용주로 정의되는 그래서 마치 피고용주들의 최종적인 목표가 고용주가 되는 것인냥 건축계의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선 그 우울한 과정을 마치 한마리의 늑대로, 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발견으로 포장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이필훈씨의 의식속에서 우리들은 '노예'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사실 이필훈씨에게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너희는 나의 노예'와 같은 대답을 하진 않을것이다. 그러나 윗 글에서 이필훈씨가 겪어온 '사실상'의 노예 생활을 언급하고 우리를 다시 그 우리안에 몰아 넣은 행위(혹은 글) 자체가 이필훈씨 본의아니게 우리를 노예로써 인정하고 있다. 결국, 이필훈씨가 주장하는 이상적인 건축가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이 회피하고자 하며 건축가로서 지양하고자 하는 '학습된 무기력'의 대표적인 사례처럼 보인다. 그리고 또한 이필훈씨 자신도 그 '학습된 무기력'에 철저하게 순응하고 있다.

 '건축은 협동작업'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말을 떠나서라도 설계사무소에서는  위와 아래의 관계가 고용주와 피고용주 혹은 스승과 제자가 아닌 소장과 직원, 즉 co-worker의 관계로 묶여 있어야 한다. 직원은 누구에게 매달려있는 존재가 아니다. 건축에서 도제식 수업이 가능했던건 조선시대 말이나 해방기 전후 혹은 건축학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던 1970~80년대 까지나 가능했던 소리다. 물론 일선에서 건축을 하고 있는 분들을 무시할 생각은 없다. 다만 '최근의 초년 건축인들이 지금과 같은 대우를 받을만 한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교육, 정치, 문화 등 모든면에서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지금에 이르러 자신의 과거를 더듬어 비교를 한다는 것은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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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글을 써놓고 나니 이 뒤를 어떻게 이어야 할지 생각이 잘 안난다.. ;; 결론이 어떻게 나야하지...흠...